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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있나요? 제주 다자요

changelifeobserve 2025. 1. 18. 00:10

빈집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낡은 도심 골목길의 한 구석, 붉게 녹슬어 버틸 듯 말 듯한 대문 뒤로 보이는 빛바랜 양철지붕의 집. 아니면 잡목이 무성하게 자라 지붕이 삭아가는 폐가 말이죠. 보통 이런 집들은 피하는 게 최선일 텐데요.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처치곤란한 폐가와 빈집이 돈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업 기회를 보고 뛰어든 스타트업들이 이 시장을 개척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수십 년간 버려졌던 빈집들도 이들의 손을 거치면 '돈 되는 집'으로 탈바꿈하고, 더불어 정부와 지자체가 고민하고 있는 지방 소멸 문제까지 해결하고 있습니다. 애물단지로 여겨졌던 빈집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바꾸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 빈집이, 동네를 살렸다

버려진 집엔 분명히 버려진 이유가 있을 텐데, 그 빈집을 사업으로 활용해 지역을 변화시킨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먼저, 아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제주 한림읍 월령리. 원래 이곳은 제주 사람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인 협재해수욕장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해안도로에서 약간 비켜 있어 올레길을 걷는 여행자 외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죠.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에 이 마을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엔데믹 이후 제주 관광객이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주민들은 2022년에 스타트업 다자요가 이곳의 100년 된 빈집 한 채를 리모델링해 '월령바당집'이라는 숙소로 내놓은 것이 큰 원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강한철 월령리 이장은 “원래 좁은 마을 길이 연휴나 휴가철마다 자동차로 북적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자요가 그 집을 처음 인수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은 부수고 새로 지어야지, 고쳐 쓸 수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강 이장은 “어릴 적부터 흉물처럼 비어있던 집이었고, 방치된 지 30년이 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자요는 이 집의 뼈대만 남기고 내부를 새로 꾸며 '바다가 보이는 독채 펜션'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하루 요금은 45만원에 달하며 대여하고 있는데요. 월령바당집이 완성된 이후 마을 내 다른 빈집 소유자들도 하나같이 자신의 집을 고쳐 숙소나 카페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한 것입니다. 이제는 빈집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집이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성공 사례들이 쌓이면서 빈집의 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2015년에 창업한 다자요에 이어 블랭크, 클리, 프라우들리 등 빈집을 활용하는 스타트업들이 잇따라 생겨났습니다. 현재 국내 관련 스타트업은 약 15곳에 이릅니다.

2. 빈집, 어떻게 돈이 되는가

빈집을 단순히 고친다고 다 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타트업들은 빈집에 경제적 가치를 더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① 폐가를 고급 펜션으로: 다자요

사업 방식: 다자요는 제주도 내의 폐가에 가까운 빈집을 10년간 무상임대하거나 저렴하게 매입한 뒤, 고급 펜션으로 리모델링하여 비대면 숙박업을 운영합니다. 제주에서는 관광지 위주로 난개발이 이루어지는 반면, 주민들이 실제로 사는 마을에는 빈집이 늘어가는 현상을 보고 이를 사업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창업자인 남성준 대표도 제주 출신으로, 현재 제주 전역에 11채의 빈집 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작 지점: 여행 플랫폼으로 시작한 다자요는 2017년 이후 빈집 활용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남성준 대표는 “빈집을 구해 잘 고치면 옛 모습을 간직하면서도 기능적으로 훌륭한 펜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농어촌민박업소엔 집 주인이 상주해야 한다'는 법규 위반 문제가 제기되어 2019년 영업이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농어촌 빈집 활용 숙박업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해 영업을 재개했고, 최근 정부가 샌드박스 기한을 2년 연장해주었으며, 관련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습니다.

운영 방식: 숙박료는 집마다 다르지만 하루 30만~55만원대입니다. 일반 고객은 다자요 앱, 하나투어, 부킹닷컴, 에어비앤비 등을 통해 예약할 수 있습니다. 일부 집들은 특정 기업이 통으로 계약해 직원들의 복지 숙소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② 별장 공유: 마이세컨플레이스

클리(마이세컨플레이스)의 숲섬 리모델링 후 사진. 사진: 클리

사업 방식: 마이세컨플레이스를 운영하는 클리는 '공유 세컨하우스(별장)'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지방에 별장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관리가 잘 안 되는 빈집을 찾아 최소한으로 리모델링한 뒤, 공유하는 형태로 운영합니다. 집주인은 공유자 중 한 명이 되거나, 집을 매각하는 방식입니다. 클리는 이를 위탁받아 운영 및 관리를 담당하며, 현재 총 4채의 세컨하우스를 운영 중이며 내년에는 이를 30채로 늘릴 계획입니다.

시작 지점: "혼자 소유하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자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관리 때문에 오히려 자유를 빼앗겼다"는 별장 소유주들의 수요를 파악한 것입니다. 박찬호 클리 대표는 “기존 소유자의 관리 스트레스를 없애고, 비어있는 세컨하우스를 함께 사용하도록 하는 데서 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운영 방식: 고객은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됩니다. 본인 소유의 집을 공유 세컨하우스로 전환하거나, 세컨하우스를 분양받을 수 있습니다. 

③ 귀촌 체험판: 블랭크

사업 방식: 블랭크도 빈집을 공유하는 서비스로, 유휴 하우스를 운영합니다. 안동, 영주, 남해, 속초 등의 빈집을 소유주로부터 저가 또는 무상으로 임차하고 리모델링 후 고객들에게 임대합니다. 2주 이상 단위로 예약이 가능하며, 장기 임대를 전제로 사업을 진행합니다.

시작 지점: 귀촌을 꿈꾸지만 시골집 구매에 부담을 느끼거나, 시골 생활이 자신에게 맞는지 검증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귀농 체험판입니다. 문승규 블랭크 대표는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더라도 지방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로망을 사업 포인트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초기에는 남해, 제주도 같은 해안가 지역에서 시작했으나 앞으로는 도심과 인접한 내륙 지방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운영 방식: 유휴 하우스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가능합니다. 각 집의 입주 현황을 확인하고, 원하는 날짜를 선택해 예약하면 전자계약서를 통해 계약을 완료합니다.

 

3. 빈집 ‘밸류업’ 비법

버려진 집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집 주인마저 경제적 효용을 포기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스타트업들은 오히려 빈집을 장점으로 보고, 역발상으로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일까요?

싸게 고쳐 비싸게 판다: 빈집은 임차료가 없거나 적습니다. 리모델링 비용도 신축보다 저렴하게 들죠. 따라서 빈집 비즈니스는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 않습니다.

365일 쇼룸: 지방의 빈집을 재생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어 대기업들과의 협업이 잦습니다. 빈집 인테리어에 전자제품, 가구, 가전 회사와 협업하여 숙소를 이들 제품의 '체험형 쇼룸'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대기업과 협업 시 리모델링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받아 투자수익률(ROI)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남성준 대표는 “빈집 숙소는 일 년 내내 고객이 방문하는 쇼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자요가 일룸과 협업해 만든 고산도들집에는 일룸 가구가 비치되어 하나의 쇼룸 역할을 합니다. 사진: 다자요

없던 시장 만들기: 클리는 한국에 없던 세컨하우스 거래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시골 주택은 도시 아파트와 달리 거래 자체가 난관이 많습니다. 클리는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 전문가들이 빈집을 직접 검토·선정하고, 자체 플랫폼을 통해 임대·매매를 중개하며, 유지·보수까지 책임지는 방식으로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합니다. 박찬호 대표는 “우리 손을 거친 집은 설계도면부터 점검·수리 이력까지 모두 기록된다”며 “세컨하우스 시장 형성 가능성이 증명됐다”고 말했습니다.

류승룡이 기획한 빈집: 빈집에 상품성을 더하기 위해 특성을 입힙니다. 문승규 블랭크 대표는 “주방이 넓었던 장점을 살려 베이킹에 특화된 공간으로 재조성 중”이라며 “앞으로도 캠핑 특화 집, 워케이션 시설을 갖춘 한옥 등 콘텐츠 기반으로 매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배우 류승룡이 기획한 두 채의 집을 이미 운영 중인 다자요는 유명 건축가, K팝 아이돌 등이 기획한 집을 출시해 브랜드 스토리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상생은 이렇게

지난해 전국의 빈집 수는 153만4919호로 8년 전보다 43.6% 증가했습니다. 인구감소 지역도 89곳 시군구로 국토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빈집 스타트업과 협업해 이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 생활인구 만들기: 마이세컨플레이스 고객들은 특정 지역을 스쳐가는 관광객도, 정주인구도 아닌 '생활인구'입니다. 박찬호 대표는 “우리 고객은 황금연휴에 세컨하우스를 찾지 않는다”며 “세컨하우스를 일상지로 인식하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정부 및 지자체의 생활인구 확보 정책과 부합합니다. 블랭크는 최소 숙박일을 일주일에서 한 달로 늘려, 농식품부 시범사업과 보조에 맞추려고 합니다.

 

◦ 지역과 함께하기: 다자요는 고객에게 지역 기업이 만든 식품을 제공해 추가 소비를 유도합니다. 남성준 대표는 “숙박 이틀차부터 고객들이 지역 식품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클리는 월 1회 세컨하우스를 방문해 관리 인력을 강화하고, 지역 고용 창출 시너지를 냅니다.

4. IT와 빈집의 만남

단순히 집을 리모델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IT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다 하는 IoT: 클리의 공유 세컨하우스는 거의 모든 시설을 스마트폰 앱으로 제어합니다. 2023년에 개설한 기업부설연구소(QLIT)를 통해 소규모 주택 관리 최적화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예약관리, 사물인터넷(IoT) 제어 시스템 등을 직접 개발해 출입 통제, 환기·냉난방·조명 제어, 에너지 사용량 측정 및 과금, 조경 관리 등을 원격으로 운영합니다. 다자요도 IoT 기반의 전기·수도·가스 자동 측량장치를 개발해 에너지 절약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마이세컨플레이스 이용자들의 앱 화면. 사진: 클리

재방문 '잡는' AI: 미스터멘션은 방문객에게 숙소 주변 식당이나 관광지를 자동 추천하는 'AI 여행 경로 추천 서비스'를 개발 중입니다. 정성준 대표는 “워케이션 방문객의 일정과 장소에 맞춰 최적의 여행 경로를 추천해 재방문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습니다.

눈보다 빠른 AI: 전국에 수천, 수만 채에 달하는 빈집을 관리하기 위해 블랭크는 AI 기술을 도입하려 합니다. 소유주가 빈집 사진을 올리면 AI가 필요한 수리 부분과 비용을 자동으로 산출해주는 시스템을 개발 중입니다. 문승규 대표는 “이 서비스가 출시되면 집 주인 설득과 건축 전문가의 실측·견적 과정을 단축할 수 있다”며 “디지털 전환의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5. 이 시장의 리스크는?

빈집 스타트업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리스크는 무엇일까요?

혁신만 우대?: 기존 숙박업 종사자들은 정부로부터 특례를 인정받아 경쟁하는 빈집 스타트업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김종수 농어촌민박협회 사무총장은 “빈집 재생은 좋지만, 대부분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 등 특혜를 받아 사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 민박업자들에게는 역차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진우 대한숙박업중앙회 사무총장도 “전국의 숙박업소가 이미 150만 개인데, 빈집을 추가로 들이겠다는 것은 기존 사업자들에게 치명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타트업들은 지자체에 매출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기존 사업자와 협력해 마찰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주 게스트하우스 민박 안내 표지판. 사진: 중앙포토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빈집의 상태는 새집부터 무너진 집까지 다양하며, 주인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일관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어려워 산업화에 장애가 됩니다. 농식품부는 농촌 빈집 실태조사 정보와 민간 플랫폼을 연계해 '빈집은행'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지만, 언제 완성될지는 불확실합니다.

관련법 부재: 빈집 스타트업은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는 만큼, 관련 법규도 필요합니다. 다자요는 2020년에 규제샌드박스로 빈집 활용 농어촌 민박사업을 시작했고, 최근 국회에 '도농교류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또한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은 빈집 정비 사업의 국비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실제 법안 통과까지는 아직 멀었습니다. 근거법이 없기 때문에 규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